[스카이폴]은 007 프랜차이즈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엄청난 영상을 통해 지난 시리즈를 적절히 오마주하며 조금씩 과거로 돌아간다.

오마주의 수준은 [어나더데이]의 기계적이고 유치한 수준이 아니다.

훨씬 정교하며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영화의 호흡도 차근차근 느려진다는 것이다.


오프닝은 분명히 [카지노 로얄] 쪽이다. 빠르고 거칠고 무대포스럽다.


오프닝의 중장비는 거저 나온 게 아님


아델의 몽환적인 주제곡이 끝나면 영화는 슬슬 브로스넌을 거쳐[각주:1] 무어 시절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즈 온리란 표현도 보이고, 아예 본드는 노쇄[각주:2]한 걸로 나온다.


그리고, 하일라이트에서는 (드디어!) 코너리로 간다.

배경은 스코틀랜드[각주:3]이고, 차는 애스턴 마틴 DB5이다.

애스턴 마틴의 번호판도 BMT-214A도 아니고, 아예 BMT-216A[각주:4]이다.

또, 영화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본드 모친의 이름도 보여준다.


BMT 216A! 214A도 아니고, 216A!!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60년대의 초기 본드 영화 풍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정리된다.

느릿하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이 영화는 최신 액션 영화의 호흡을 의도적으로 버렸다.

처음엔 빠른 호흡을 보여주지만 천천히 과거로 돌아가며 과거를 추억한다.

그러나 그 과거를 마냥 "옛날이 좋았지. 흥!"하며 칭송하지 않는다.

훨씬 품위있게 과거의 영광이란 의미를 현재에서 재해석한다[각주:5].

동시에 왜 50년이나 된 제임스 본드가 현 시점에도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이 영화는 올드 007 팬에게는 거대한 종합선물세트이며, 최고급 뷔페이다.




기타 이 영화에 대해 느낀 단상들…


1. 노쇄한 본드는 무어 본드의 상징 외에도 소설로의 회귀를 의미


소설 속의 본드는 영화와는 달리 수퍼 스파이는 아님.

심지어 <두번 산다>에서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로 넘어가며 기억상실증까지도 걸림.

이러한, 육체적/정신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제임스 본드를 그려냈음



2. 조직과 요원이 끈끈하게 서로를 믿는 MI6


사실 조직과 요원이 끈끈하게 믿는 스파이 영화는 굉장히 진부해 보이는 게 사실임.

비단 지금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도 진부하게[각주:6] 받아들였음.


하지만, 그 부분이 결국 007 영화의 특징이 되어버렸는데, 이 영화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줌.



3. 발터 PPK/S의 귀환


발터 PPK/S가 돌아왔음.

문제는 이건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도 스리슬쩍 돌아왔었다는 것.

아예 [퀀텀 오브 솔러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느낌을 받음




4. 호그와트의 마법사놈들


MI6에는 볼드모트가 근무하고, 국방장관은 무려 말포이 엄마라는 불편한 진실.

마법사 네놈들 대체 머글 세계에 침투해서 무슨 짓을 꾸미는 게냐!



5. M이 사는 집의 진짜 주인은?


007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전설적 작곡가 존 배리의 집임 (IMDb 참고)



6. With pleasure, M. With pleasure.


말이 필요 없음.

[카지노 로얄]의 "My name is Bond… James Bond"와 더불어 굉장히 인상에 남는 마지막 대사.



7. 건배럴 시퀀스가 이번에도 뒤로 밀림


이 부분 역시 갠적으론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오마주라기보다 [퀀텀…]을 아예 부정하는 느낌임.

애초에 그 영화에서는 뒤로 밀린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 이유를 포함해버림


다 좋은데, 솔까말, 다음 작품에선 부디 제자리로 왔으면 좋겠음



8. 마지막 제임스 본드 테마는 토마스 뉴먼의 곡이 아님


엔딩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 테마는 음악을 맡은 토마스 뉴먼의 곡이 아님.

바로 [카지노 로얄]의 "The Name's Bond… James Bond"를 그대로 쓴 것임.



이는 이 영화는 60년대와 동시에 [카지노 로얄]의 엔딩으로도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함.



9. 영화는 전체적으로 한 편의 문학작품을 연상시킴


샘 멘데스 감독이 [다크 나이트]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 건 단순히 플롯만을 말하는 게 아닌 듯.

영화 전체의 호흡은 오히려 문학작품을 연상시키고, 심지어는 알프레드 테니슨의 "율리시즈"가 등장함.


샘 감독과 놀란 감독 모두 영문학과 출신이란 점이 꽤 작용한 지도 모르겠음.

참고로, 샘 멘데스는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 취득.



  1. 브로스넌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옴 [본문으로]
  2. 노쇄의 상징 무어표 본드 [본문으로]
  3. 본드의 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출신인 것은 최초 소설엔 없다가 코너리 본드를 본 뒤 이언 플레밍이 추가한 설정임 [본문으로]
  4. [골드핑거], [썬더볼]의 DB5는 BMT-216A, [골든아이]의 DB5는 BMT-214A [본문으로]
  5. M이 읊는 시는 고전 중의 고전,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율리시즈(Ulysses)"임. [본문으로]
  6. 조지 래젠비가 007을 안 찍은 이유 역시 그것이었음. 1970년대에 무슨 스파이냐고… [본문으로]
  1. 007 2012.11.02 21:13 신고

    스카이폴... 애스턴 마틴이 등장할 때의 전율은 크^^;;
    근데 저는 사실 극장에서 나온 직후에는 좀 아쉬웠더랬습니다.
    그래도 50주년이고 4년이나 기다렸는데, 스트롬버그나 '선더볼'급 작전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스케일을 내심 기대했지요. 영화 자체는 굉장히 몰입해서 봤지만서도(그도 그럴것이 본드 팬한테 본드 무비는 80은 먹고 들어가지요 ㅋㅋ. 물론 실제로도 흡입력이 있었고) 기대보다 밋밋했던 액션이나 나홀로 집에틱한 엔딩이라든지... Q가 '이제 폭발하는 파커 볼펜 따위는 없다.'고 대놓고 선언할때는 눈물이 ㅠㅠ.

    뭐, 그래도 되돌아보니 이만한 영화가 50주년을 장식해준 게 그리고 '재부팅'을 완성시켜준 게 참 고맙더군요. 정말 제대로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50년을 되돌아보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곳곳에 팬들을 위한 주옥같은 오마주 - 옥토퍼시를 연상시키는 초반 기차 액션, 잠깐이지만 오토바이 타고 오는 경찰들은 유어 아이즈 온리의 오토바이도 연상시키고, 살인면허, 두번산다... '자꾸 잔소리하면'이라면서 빨간 버튼에 손을 올리는 장면은 본드 팬이라면 웃을 수밖에 없으며, 머니페니의 복귀, 마지막으로 돌아온 M의 집무실! 그중 '탈출 좌석'다음으로 맘에 들었던 것은 돌아온 본드의 유머^^ 140분간의 축복이 따로 없었습니다.

    무려 3편을 할애해서 재부팅을 끝냈으니, 이제는 통상적인 미션으로 본드를 만났으면 좋겠네요. 다니엘 크레이그 표 스키액션도 궁금하구요. 비록 스펙터도 없고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평화는 본드한테 맡겨야 안심이 되니까요.

    P.S 저도 건배럴 씬을 이제 좀 다시 앞으로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ㅠㅠ.


  2. 2012.11.03 23:58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www.glasmoon.net BlogIcon glasmoon 2012.11.11 20:39 신고

    여러모로 "퀀텀..."이 걸리지 않을수가 없는데,
    그에 대한 취급(?)은 앞으로 차차 결정되겠지만 "카지노 로얄"에서 신삥이던 본드가
    이번에는 급거 노쇄한게 되었으니 그 사이 팔팔한 시기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게 다 퀀텀 때문이다!?

    • 하지만, 그 캐릭터가 교체되었으니 이제 그 전의 얘기를 다룰 순 없고, 여러모로 퀀텀은 그냥 흑역사로 들어갈 것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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