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끝나가는 11월 6일에 24번째 007 영화인 [스펙터]가 공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스펙터란 조직은 오래된 007의 숙적이면서도 영화에 오랫동안 등장하지 못한 존재다.
007 프렌차이즈에서 스펙터가 어떤 존재였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간략하게 정리했다.




1. 소설 속의 스펙터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소설 <썬더볼(1961)>을 집필할 무렵엔 냉전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냉전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시간적 배경이 제한을 많이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썬더볼] 초판 표지


이에 따라 그는 국제정세(특히 소련)와 무관한 새로운 빌런[각주:1]을 만들기로 한다.
플레밍은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 등 동서양의 다양한 범죄집단을 모티브로 하여 스펙터라는 조직을 창조한다.

007 소설에서 이 스펙터가 주적으로 등장한 것은 세 편이다 : <썬더볼>, <여왕폐하의 007> 그리고, <두번 산다>[각주:2]
이 작품들은 보통 블로펠드 3부작으로 불리는데, 대략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진행된다.


- <썬더볼>: 존재를 알리고, 조직의 2인자인 라르고를 본드가 제거
- <여왕폐하의 007>: 스위스에서 두목 블로펠드를 죽일 뻔 하고 조직도 궤멸시키지만, 본드의 아내가 피살됨
- <두번 산다>: 일본에서 이름을 바꾸고 암약하는 블로펠드를 대결 끝에 사살하여 복수에 성공함


이 세 편은 1차전은 본드 승리, 2차전은 블로펠드 반격, 3차전은 복수라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2. 영화 속의 스펙터

앞에서도 언급했듯 스펙터는 국제정세와 무관한 빌런이다.
즉, 영화화 하면 어떤 나라와도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 큰 흥행을 기대[각주:3]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온 프로덕션은 스펙터와 무관한 첫 작품 [살인번호]부터 빌런을 스펙터로 설정한다.
세번째 작품 [골드핑거]만 빼고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까지 6편에서 몽땅 스펙터가 나온 것이다.
대략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진행되는데, 뭔가 이상하다…


- [살인번호]: 빌런인 닥터노가 자신은 스펙터의 조직원이라고 소개하고, 조직에 대해 브리핑[각주:4]
- [위기일발]: 냉전시절 영소간 대결을 소재로 한 원작을 스펙터가 주도하는 삼자대결로 변경
- [썬더볼]: 원작과 유사하게 진행되며, 배신자를 제거하는 냉혹한 모습도 보여줌
- [두번 산다]: 일본에서 블로펠드와 직접 대면하나 사살에 실패함
- [여왕폐하의 007]: 스위스에서 블로펠드와 직접 대면하나 못 알아봄. 나머지는 원작과 유사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미국에서 블로펠드를 만나며, 그를 세 번 살해하나 복수의 느낌이 전혀 없음
- [유어아이즈온리]: 블로펠드로 추정되는 이름 모를 대머리 남자를 오프닝에서 제거해버림


이 영화들에서 보여준 스펙터/블로펠드의 모습은 눈여겨볼 부분이 몇 있다


- 처음 대면하는 듯한 모습을 두 번 보여주는데, 이거 참으로 어색함


우리가 [두번 산다]에서 만났던가? 아닌가?


- 트레이드 마크인 페르시아 고양이는 영화에서만 등장함. 소설에선 그런 거 없음


이 고양이는 원작에 대단히 충실했던 [여왕폐하의 007]에서는 등장하지 않음


- 초기 작품 세 편에선 블로펠드가 얼굴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고양이만 보여줌[각주:5]


얼굴은 안 보이지만, 대머리가 아니었던 [썬더볼]의 블로펠드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와 [유어아이즈온리]의 간격은 무려 10년
- [유어아이즈온리]에선 아무리 봐도 블로펠드인데,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음


나는 블로펠드가 아닌 게 아니지 아니하지 않은가…



3. 스펙터와 관련한 법률적 이슈

소설에서의 스펙터가 명확한 3부작 구성을 가졌던 것에 비해 영화 속의 모습은 갈팡질팡 해보인다.
이는 사실, 법률적 이슈를 포함한 외부 요인과 크게 연관이 있다.



1959년 [썬더볼]의 각본을 집필할 때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엄과 함께 공동집필 했다.
이 작품이 첫 007 영화가 될뻔했으나, 제작이 무산되면서 플레밍은 1961년에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출간한다.
이에 맥클로리와 휘팅엄은 소설 <썬더볼>의 저작권을 주장하며 플레밍을 고소하게 된다.
결국 법원은 <썬더볼>의 공동집필을 인정하고, 영화화 및 스펙터/블로펠드 캐릭터의 판권을 맥클로리에게 이임하는 것으로 결론낸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007 전쟁에 그 재능을 낭비해버린 케빈 맥클로리


다음해인 1964년 플레밍이 심장마비로 사망함으로써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막상 맥클로리가 영화 [썬더볼]을 제작하려고 하자[각주:6]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이미 EON은 두 편의 007 영화를 흥행시킨 상태였고, 자신은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EON을 찾아가 [썬더볼] 제작을 위해 협상을 하게 되는데,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 소설 <썬더볼>은 12년간 EON/맥클로리 모두 영화화 할 수 없음
- 스펙터/블로펠드 캐릭터의 판권은 [썬더볼] 개봉 이후 EON과 맥클로리가 10년간 공동 소유
- 맥클로리를 [썬더볼]의 원작자로 표기함


이에 합의한 뒤 제작된 영화 [썬더볼]은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되었다.
이윽고 007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12년이 지난 1976년 어느 날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스펙터/블로펠드를 등장시키려는 EON에 맥클로리가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EON은 블로펠드를 스트롬버그라는 인물로 대체해버렸다.
게다가, 다다음 작품인 [유어아이즈온리][각주:7]에서는 블로펠드[각주:8]를 아예 사살해버리고, 이후 그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블로펠드가 될 뻔 한 빌런, 칼 스트롬버그


그 이후,  다양한 이슈가 있었으나, 2006년 11월 20일 맥클로리가 사망하면서 그의 도전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3년 11월 15일 EON이 맥클로리 에스테이트에서 모든 권리를 인수하여 법적이슈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렇게 스펙터/블로펠드에 대한 전권을 획득한 EON이 2014년 12월 4일 차기작으로 발표한 제목이 [스펙터]인 것이다.




두 줄 요약


- 최초엔 EON 측에서는 스펙터를 대부분의 007 영화에서 빌런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음
- 저작권 문제가 터지자 스펙터를 버렸으나, 2013년 스펙터 관련 모든 권리를 인수하여 차기적으로 결정함



덧. 2010년 5월 14일 스위스 쉴트호른[각주:9]에서 시계를 하나 샀다.


Apple | iPhone 6 | Normal program | Pattern | 1/30sec | F/2.2 | 0.00 EV | 4.2mm | ISO-160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SPECTRE: 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sion


[여왕폐하의 007]과 본드 부인 그리고, 다시는 007 월드로 돌아올 수 없는 스펙터를 추억하며 산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시계는 갑자기 현직 빌런을 상징하는 시계가 되었다!!!



  1. 이 접근은 결국 007 프렌차이즈의 흥행 원동력이 됨 [본문으로]
  2. <썬더볼>의 다음 작품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도 잠시 언급됨 [본문으로]
  3. 북한을 악당으로 등장시켰다고 [어나더데이] 불매운동 한 거 보면… [본문으로]
  4. SPECTRE의 원어인 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이 여기서 언급됨 [본문으로]
  5. 정확히는, [살인번호]에선 블로펠드가 등장하지 않고 언급되기만 함 [본문으로]
  6. 그는 EON과 무관한 독자적인 [썬더볼]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었음 [본문으로]
  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엔딩 크레딧에는 (다다음이 아니라) 다음 작품이 [유어아이즈온리]로 표시됨 [본문으로]
  8. 블로펠드라고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누가 봐도 블로펠드인 페르시아 고양이를 들고 있는 의문의 사나이 [본문으로]
  9. [여왕폐하의 007]를 촬영한 바로 그 곳 [본문으로]
  1. 꿀꿀이 2015.04.19 16:48

    CR이나 TB는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군요.

    (판권이나 기타등등...)

    사실 맥클로리가 EON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존재겠지만

    007 이라는 브랜드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에(특히 GE개봉전 6년여 간의 공백기간동안...)

    맥클로리를 무턱대고 욕 하긴 뭐할것 같습니다.

    물론,자신의 재능을 007에만 쏟아부은 맥클로리는

    바보인게 확실하지만요.ㅋㅋㅋ

    • 그 6년간의 공백이 만들어진 게 맥클로리와의 소송 때문인지라, EON 입장에선 욕할만 합니다.
      물론, 그 기간이 냉전 종식으로 인해 007 쪽에선 뭔가 방향을 잡기 애매한 기간이기도 했습니다만.

  2. 꿀꿀이 2015.04.19 17:52

    맞습니다.제가 착각을 했습니다(죄송합니다.ㅜㅜ)

    그나저나,6년여의 공백이 참 다양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LTK'가 흥행실패 했고,베테랑들이 대거 빠지고 새로운 인력들이

    들어오고(물론,베테랑들의 사망&은퇴로 불가피했만요.)

    냉전 종식이라든지(LTK의 흥행실패와 더불어 가장 큰 원인이기도하죠.)

    (블루님의 이전블로그 에서 이 이야기를 'GE'리뷰때 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하튼,eon측은 90년대 초중반은(LTK와 GE사이)

    악몽의 연속이었던것 같습니다.

    • 그 기간에 일이 하나 더 터졌습니다.
      알버트 브로콜리가 1996년에 사망했죠.
      물론 양아들인 마이클 윌슨과는 공동제작을 오랫동안 해오기는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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