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증을 기반으로 한 밀리터리 영화인 [헌터 킬러]가 나왔다.

아마도 2012년에 개봉했던 [액트 오브 밸러] 이후 처음으로 나온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제 극장에서는 국내외 모두 거의 내려간 것 같은데, 아쉽게도 흥행성적은 좋은 편이 아닌 것 같다.

제작비는 약 4천만 달러로 알려져있는데, boxofficemojo 통계에 따르면 극장 총 수익은 3천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듯.

우리나라에서도 12월 24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55,886명에 4천 5백만원 정도의 수익에 그쳤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알고 보면 꽤 잘 만든 영화이다.

실제 함정에서 사용되는 무기체계를 거의 사용하며, 실제 사용되는 무장들과 전술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각색이 좀 되기는 했어도, 적어도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지적할만한 문제가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영화의 번역은 황석희 님께서 담당하셨는데, 역대 밀리터리 영화의 번역 중 최고 수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다.

영화 상영 후에 피드백 또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계신데, 피드백 된 내용은 최대한 2차 매체에 반영할 예정이라 하신다.

DVD 및 블루레이 등에 포함될 자막은 극장 자막보다도 더 완성도가 높을 것이니 구매 의사가 있는 분들을 참고할만 하다.



1. 원작/원작자


이 영화는 소설 <Firing Point>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2명의 공동저자가 집필했는데, 그 중 한 명인 조지 월라스(George Wallace)는 잠수함 장교 출신[각주:1]이다.

이 분은 본인이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 ROTC 출신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조 글라스 함장의 배경은 그대로 본인을 투영했다고 볼 수 있다.



2. 영화의 기본 틀


재미있는 사실인데, 이 영화의 틀은 무려 걸작 잠수함 영화 [크림슨 타이드]와 상당 부분에서 일치한다.

러시아에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미 해군 잠수함이 이를 처리하기 위해 러시아 해역으로 몰래 들어가는 기본 틀이 완전히 일치한다.


오히려, [크림슨 타이드]에서는 러시아 해역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음에도 영화의 진행을 위해 들어간 면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러시아 해역으로 들어가는 타당성도 가지고 있다.



3. 합참의장 vs 존 피스크 제독?


합참의장과 피스크 제독의 의견이 다르고, 결국 중재안(?)으로 진리의 둘 다를 수행하기로 하는데, 이것 역시 [크림슨 타이드]와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크림슨 타이드]는 둘의 판단이 모두 옳고, 모두 합리적인데 반해, 이 영화에선 합참의장의 판단이 좀 더 옳아보인다.




3. 해군의 계급(영어)


미국의 경우 해군은 육군과 계급 체계가 다르다.

이건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도 다 유사한데,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다.


특히 많이들 헷갈리는 계급이 Captain이다.

육군의 경우 Captain은 대위지만, 해군은 대령 또는 함장이다.


해군 중령Commander.

즉, 007 영화에서 Commander Bond는 본드 중령으로 번역해야 하는데, 무려 극장 자막에서 본드 사령관[각주:2]으로 나온 적이 있다.


영화에서 오프닝에 등장하는 탬퍼 베이 함의 함장 및 조 글래스 함장 모두 계급중령(Commander)이고, 직책함장(Captain).

이걸 대령으로 번역하면 산으로 갈 수 있지만, [헌터 킬러]에선 완벽하게 번역되어 있음.



4. DSRV (Deep Submarine Rescue Vehicle: 심해 구조 잠수정)


영화 앞부분에서 DSRV를 탑재하는 내용이 나오고, 영화에서도 이 DSRV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고증 오류.

미해군은 DSRV 2대를 운용하다가 모두 SRDRS로 대체했다.



DSRV-2가 2000년에 퇴역했는데, 정작 소설 <Firing Point>는 2012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이 장비가 사용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이건 원작자가 몰랐을 리는 전혀 없고, 소설/영화의 진행을 위해 적용한 설정임.



5. B급 시나리오?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실제 탑재되는 무기체계와 장비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장비들이 최대한 활용될수록 스토리라인이 극적으로 흐르기 힘들어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영화의 흐름이 B급영화 스럽게 느껴졌다면, 그건 사실 시나리오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실제 장비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6.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근의 어떤 장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럼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있었다.

사실, 그 장면에서 사용된 무기체계는 근접방어체계(CIWS)이고, 실제로 있는 장비이다.



영화에서와 같은 환경에서 동작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뜬금 없이 튀어나온 엉뚱한 장비는 아니라는 의미임.


참고로, 우리나라 군함들은 CIWS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골키퍼를 사용해왔는데, 최근 단종되면서 천조국에서 만든 팔랑크스를 탑재하고 있음.



7. 그런데, 러시아 구축함에 함대지?


러시아 구축함에는 아칸소 함을 작살낼 수 있는 충분한 화력(ㄷㄷㄷ)과 더불어 함대지 유도탄도 탑재한 상태로 나온다.

하지만, 실탄의 적재는 작전에 맞게 하게 되어있고, 그 작전에서 함대지를 탑재하고 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

영화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겠지만, 뭔가 어색한 건 사실임.



8. 저 배우는 그 배우 아냐?


터프한 특수부대를 이끄는 빌 베어만 대위 역은 토비 스테판이 연기했는데, 이 분은 다름 아닌 [007 어나더데이]의 구스타프 그레이브스.

처음 봤을 땐 로어셰크를 연기했던 재키 얼 헤일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이 자카린을 연기한 배우는 알렉산더 디아첸코(Alexander Diachenko)라는 러시아 출신 배우임.

근데, 이 분은 또 네이선 필리언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음…



러시아 반란군의 트레티악 역을 맡은 분은 이고르 지지카인(Igor Jijikine).

이 분은 다름 아닌 [인디아나 존스] 4편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분.



그리고, 러시아 잠수함의 안드로포프 함장을 연기한 배우는 고 미카엘 뉘크뷔스트(Michael Nyqvist).

이 분은 다름 아닌 [존윅]에서 그 분(개를 죽인 색히…)의 아버님[…]을 연기하셨는데, 2017년 6월 27일에 돌아가셨다.

이 영화는 그의 유작 중 하나임.


사실, 영화에서 이 분의 캐릭터는 [붉은 시월]의 라미우스 함장 캐릭터를 상당 부분 차용한 느낌임.


Michael Nyqvist (1960–2017)



9. 번역


이 영화는 아마도 최초로 해군 용어들을 거의 완벽하게 번역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가 개봉된 뒤에 실제 잠수함 장교로 근무하시는 분이 일부 번역 오류를 피드백하셨다는데, 이건 역설적으로 번역이 아주 훌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번역에 아주 조금의 도움을 드렸는데, 이 정도로 훌륭한 번역의 영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점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1. 최종 계급은 중령 [본문으로]
  2. [네버다이] 마지막 무렵 웨이 린과 본드가 숙면을 취하는 부근[…] [본문으로]
  1. time 2018.12.31 03:33

    개인적으로 보면서 한가지 거슬렸던게....USS 아칸소는 지금 시점에서 아직 건조 시작도 안한 최신형 버지니아급인데 정작 영화에선 초기형 타입의 토마호크용 수직발사관을 가지고 있더군요. CG 작업하면서 확인을 꼼꼼히 못한 모양입니다.

    https://pbs.twimg.com/media/DY_LPBTUQAANmNO.jpg

  2. Favicon of https://gamtr.tistory.com BlogIcon gamtr 2020.01.10 21:08 신고

    러시아 구축함을 보니 우달로이 I급인 것 같은데, 함대지 미사일을 따로 탑재하고 나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달로이 급에서 저 위치는 SA-N-9 대공미사일을 탑재하는 곳인데, 사실 이 미사일은 최근 이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토르 대공미사일의 해군형으로 개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토르 대공미사일을 해군함정에서 운용할 수 있게끔 만든건데, 사실 이 토르 대공미사일은 제한된 상황이지만 지상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형제(?)인 토르 대공미사일 해군형도 마찬가지로 지상 목표물 공격이 가능하죠.
    다시 말하면 저 구축함이 일부러 대지미사일을 탑재하고 작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원래는 대공용이지만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대지공격도 가능한 토르 대공미사일을 건물을 향해 발사했다고 보시면 될 거에요.

    그리고 저도 한가지 거슬리는게, 우달로이 급이 지금 개량을 거치고있긴 한데, 선수의 주포를 2개 다 들어내고 그중 하나에 RBU-6000 대잠로켓을 설치한 게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앞의 주포 자리에 설치된 카쉬탄 CIWS야 뭐 현재 우달로이 급이 개량되면서 달리니까 상관은 없지만, 나머지 주포 자리를 대잠로켓이 차지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현재 서방의 군함에 비해 화력이 약하다고 평가되온 AK-100 100mm 단장포 2문을 130mm인 AK-130 2연장포 1문으로 교체하는 중일 정도로 주포의 화력도 중요하게 생각하고있는 러시아 해군인데, 선수의 주포 1문은 남겨놔야하는데, 그 주포가 들어가야할 위치에 대잠로켓을 설치한 거거든요. 원래 우달로이급의 대잠로켓은 함미부분에 있어서 굳이 떼어올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CG작업팀이 선미의 대잠로켓을 표현하려면 구축함의 뒤쪽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해야해서 거기에 드는 돈과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냥 선수에 전부 때려박은건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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