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두번산다꞉ 본드를 안드로메다로 보낸 뻔한 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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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런 영화가 있습니다. 작품성은 뻔할 것 같은데 왠지 땡기는 영화. 안봐도 비디오이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지는 영화. 막상 보고나면 내가 이걸 왜 봤을까 ㅠㅠ 하면서도 그래도 땡기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1. 소설 《두번산다》
이 작품은 스펙터 및 블로펠드와 대결을 벌이는 블로펠드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주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이전 작 《여왕폐하의 007》에서 아내 트레이시를 잃은 제임스 본드는 슬픔에 빠져 비밀요원으로서 '불능' 판정을 받는다. 살인 면허(00)를 박탈당하고 외교국 소속 코드명 7777로 좌천된 그는, 일본에서 소련의 암호 정보인 MAGIC-44를 입수해 오라는 사실상의 퇴출 임무를 맡는다.
일본 정보부의 수장 타이거 타나카는 본드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죽음의 성'이라 불리는 요새에서 독성 식물 정원을 가꾸며 자살 희망자들을 모으는 미친 식물학자 '닥터 섀터핸드'를 암살하라는 것.
사진 속 섀터핸드가 아내의 원수 블로펠드임을 알아본 본드는 분노를 억누르며 닌자 훈련과 요가를 통해 자신을 갈고닦는다. 결국 성에 잠입한 본드는 일본도를 든 블로펠드와 혈투 끝에 그를 교살하며 복수에 성공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기억을 잃고 만다.
얼마 되지 않는 줄거리이지만,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체적으로 깔고 있는 아주 무거우면서도 거친 소설이다.
제목은 비록 《두번 산다》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목 You Only Live Twice는 일본의 하이쿠(短詩)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본드가 타나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You only live twice: Once when you’re born. And once when you look death in the face.
우리는 두 번 산다: 한 번은 태어났을 때, 그리고 한 번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게다가, 이언 플레밍이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다른 비장미도 느껴진다.
2. 영화 〈두번산다〉
미국의 우주 비행선이 궤도상에서 의문의 납치를 당하며 3차 대전의 위기가 고조된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납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미국의 CIA가 아닌 영국의 MI6가 본드를 파견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적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홍콩에서 본드의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이상한 연출을 감행한다.
(이런 쌩쑈를 하고 나서 M이 본드에게 하는 대사는 “3주밖에 시간이 없네. 알지?” 임)
일본에 잠입한 본드는 납치된 우주선이 일본의 화산 지대에 착륙했다는 단서를 포착한다.
타이거 타나카의 닌자 특공대와 함께 침투한 곳은 거대한 화산 분화구 내부에 숨겨진 스펙터의 첨단 본거지. 본드는 우주선 발사를 저지하고 기지를 폭파시키지만, 숙적 블로펠드는 혼란을 틈타 탈출한다.
3. 영화 〈두번산다〉의 장점
a. 눈이 즐거움
이 영화는 전작 〈썬더볼〉에서 맛들였던 블럭버스터화를 극단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 작품이다.
부두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또, 죽음의 성을 대신하여 화산 속에 위치시킨 스펙터 기지의 거대한 세트는 미니어처가 아닌 진짜 화산의 느낌이 들고, 우주도 잠깐이나마 배경으로 등장해서 지구 뿐만 아니라 우주도 본드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실제 존재하는 장비인) 미니 헬리콥터를 등장시켜 아기자기한 공중전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눈요기로는 충분한 영화였다.
b. 강력한 헨치맨(보디가드)도 등장
제임스 본드는 블로펠드의 보디가드인 한스와 싸우는데, 이 캐릭터는 〈골드핑거〉에서의 오드좁에 〈위기일발〉의 그랜트와 같은 현실성을 부여한 캐릭터이다.
한스를 등장시킴으로서 제임스 본드의 육체적인 강력함을 은근히 표현한다.
c. 팜므 파탈도 등장
스펙터의 여자 요원인 헬가 브란트가 제임스 본드를 죽이려고 한다.
이 캐릭터는 〈골드핑거〉와 비슷한 비행기에서 〈썬더볼〉의 피오나 볼페처럼 본드와 동침한 후 죽이려 한다.
d. 미소간의 달탐사 경쟁을 비꼼
이 영화가 나올 때는 미소간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나온지 2년 뒤에는 아폴로 11호가 실제로 달에 착륙하게 된다.
이 무렵 한창 심했던 미국과 소련 사이의 알력싸움을 영국은 약간 떨어져서 바라본다는 설정으로 신사적인 영국정부의 이미지를 슬쩍 보여준다.
4. 하지만, 문제는…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는 이러한 장점들이 전작들에 비해서 훨씬 투박하고 어설프게 묘사되어있다는 점이다.
또, 전작에서 등장했던 장면들을 이리저리 오마주(패러디?)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 실소를 자아낸다.
게다가 전작들 혹은 이후 작품들과의 관계가 애매하다는 문제도 있다.
문제점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a. 블로펠드의 얼굴 공개
내가 블로펠드야… 좀 신비스럽지 않니?
앞선 4편의 007 영화 중 3편에서 얼굴을 숨긴 채 등장했던 블로펠드가 드디어 얼굴을 공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블로펠드의 신비감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더군다가 소설에서는 둘이 얼굴을 맞대고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며 강력한 육체적인 힘을 과시했던데 비해서 영화에서는 싸움은 보디가드가 대신해주고, 자신은 도망치기만 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인다.
b. 본드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질질 끌며 2번이나 놓침
처음 나오는 상황은 헬가 브란트가 본드를 죽이려는 장면이다.
자기 본거지에서 본드랑 동침해놓고는 막상 그를 죽이려할 때는 비행기에 태운 뒤 자신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고 본드만 비행기에 남긴다.
기지에서 제거한 뒤에 비행기를 태워도 되었고, 비행기에서 본드를 쏘아도 됐을텐데 말이다.
두번째는 블로펠드가 본드를 쏘려는 장면이다.
주변에 본드의 아군들이 없을 때는 오사토 사장만 쏘며 시간을 끌다가 주변에 아군(닌자들!!!)이 깔려 있을 때가 되어야 본드를 쏘려고 하고, 당연히 저지당한다.
오사토를 쏠 때 본드를 같이 쐈으면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바로 끝나버렸을텐데…
c. 닌자의 무술을 배워놓고는 전혀 써먹지 않음
소설에서는 닌자의 무술(인술)을 배운 뒤 이것을 이용해서 블로펠드와 박터지게 싸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실컷 배워놓고는 써먹지 않는다.
한스와 싸울 때 약간의 유술을 쓰긴 하지만, 이 정도는 〈골드핑거〉에서도 보여준 수준이다.
d. 우주선을 원거리에서 자폭시킬 수 있는 스위치?
왜 있는지 모를 기능인 우주선 자폭 스위치가 달려있다.
어떤 상황을 생각해도 이 기능은 필요없다.
“단지 제임스 본드가 침투해서 스펙터의 계획을 방해할 때만 필요한 기능이다.”
이 기능은 제작진에서도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는지, 이후 〈두번산다〉의 설정을 상당수 그대로 차용한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는 자폭 기능을 배제하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만든다.
e. [여왕폐하의 007]과의 관계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든 것은 블로펠드 3부작이다.
《카지노 로얄》에서 여자에 대해 냉소적인 성격이 형성되었다가,
《여왕폐하의 007》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연 여자가 생겼는데 죽임을 당하고,
《두번산다》에서 처절한 복수를 함으로써 캐릭터의 입체성이 확보된 것이다.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입체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었으나 결국은…
하지만, 영화에서는 “복수”의 코드가 거세되면서 이러한 캐릭터의 입체성이 사라져버렸다.
특히 〈두번산다〉가 〈여왕폐하의 007〉보다 먼저 제작되는 바람에 평면적인 캐릭터가 유지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 두 영화에서는 서로 얼굴을 맞대면서 계속 처음 본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 역시 시리즈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f. 적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누구에게 죽음을 위장?
오프닝에서 죽음을 위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후의 대사를 보면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적들에게 죽음을 위장한다는 얘기를 해준다.
적이 누군지는 훨씬 이후에 알게 되는데, 그럼 과연 누구에게 죽음을 위장했다는 것일까?
이 장면은 사실, 〈두번산다〉(You Only Live Twice)라는 제목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억지로 넣은 장면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장면은 생뚱맞다.
g. 세트는 커졌으나 클라이막스의 정원(독 식물과 물고기)는 어디로?
소설 《두번산다》의 클라이막스는 당연히 독 식물과 독 물고기가 깔려있고, 독수가 흐르는 블로펠드의 성(Castle of Death)의 정원에서의 맞짱이다.
이 장면은 제대로 영화화되었으면 〈용쟁호투〉의 거울방 격투씬처럼 두고두고 전설이 되었을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산 내부로 설정이 바뀌면서 세트는 거대해졌는데, 정작 이 정원은 등장하지 않는다.
잠깐 등장하는 비슷한 곳은 물고기의 독 때문에 죽는 것인지, 피라냐 등의 식인물고기에게 먹혀서 죽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제임스 본드가 한스를 이곳에 빠뜨려 죽인 다음의 대사는 “Bon Appetit!”(맛있게 먹어~)이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이거… 독수야? 육수야?
h. 웬 우주?
결국 제임스 본드가 우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그는 우주복을 입고 안드로메다로 나갈뻔 한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제임스 본드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즉, 스파이 스릴러의 주인공이 액션 어드벤처의 주인공으로 변한 것도 모자라 SF 오락영화의 주인공으로 변할뻔 한 것.
이후, 거대자본이 투입된 괴작인 〈문레이커〉에 가면 이러한 정체성의 오염이 극에 달하는데, 이러한 오염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 작품이 바로 이 〈두번산다〉인 것이다.
5.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
워낙에 소설에서 따온 것은 제목과 일본 배경밖에 없기 때문에 진정한 차이점을 나열하는 것은 어렵다.
비교는 사과와 사과를 비교(apple-to-apple comparision)해야지, 사과와 배를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재미를 위해서 몇 가지 나열해본다.
- 소설에서는 “You only live twice”라는 문장은 본드가 타나카에게 보낸 편지의 한 문장이지만,
영화에서는 블로펠드가 본드에게 하는 대사임(넌 두 번밖에 못 살아!)
(이 짧지만 멋지고 중후한 문장이 저런 천박한 대사로 변질되다니… ㅜ.ㅜ) - 소설에서의 블로펠드의 기지에는 독 식물과 독 물고기가 있는 정원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비슷한 모양의 연못이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피라냐가 살고 있음
- 소설에서는 본드와 블로펠드가 마지막으로 대면하지만,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대면함
(물론 〈여왕폐하의 007〉에서 다시 처음으로 대면하기는 하지만…) - 소설에서는 닌자의 무술을 수련한 본드가 단독침입하지만, 영화에서는 닌자들이 단체입장함
(물론 몰래 잠입하고… 이딴 거 없다. 폭탄을 터뜨려가며 아주 생난리를 떤다)
자빠지는 일본 정보부 산하의 정상급 닌자. 이들이 세계평화를 지켜낸다. 혹시 광우병 닌자?
6. 영화 〈두번산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 일본에서는 무기 소지가 불법이기 때문에 총기류 촬영에는 장난감 총을 사용함
- 여배우 미에 하메가 아팠기 때문에 미에 하메가 진주 조개 다이빙을 하는 장면에서 션 코너리 경의 부인이 대역 촬영함
(코너리의 부인은 거의 모든 운동에 만능이었다고 함) - 타이거 타나카 역을 맡은 테츠로 탐바는 유명한 배우이면서 저명한 최면술사임
- 헬가 브란트 역을 맡은 카린 도어는 살해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뒤 목이 쉬어 나흘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음
- 오사토 회장 역을 맡은 테루 시마도는 이 역을 맡기 전까지는 수위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