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살인면허꞉ 실패로 끝난 “소설로의 회귀”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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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일발〉에 이어 두번째로 좋아하는 007영화다.
이 영화의 흥행실패는 (EON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0. 소설에 기반을 둔 (거의) 마지막 작품
〈카지노 로얄〉은 워낙 특이한 경우라 제외하면 〈살인면허〉는 소설을 소재로 한 007 영화 중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필릭스 라이터가 상어에게 공격당하는 부분은 소설 《죽느냐 사느냐》의 한 장면으로, 본드의 눈이 뒤집어져 복수를 감행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영화 〈죽느냐 사느냐〉는 이 부분이 빠져있어 힘이 쭉 빠져버렸는데, 이 내용이 드디어 〈살인면허〉에서 나온다.
1. 영화 〈살인면허〉의 장점
a. 특장점꞉ 원작 캐릭터와 분위기로의 완전한 회귀
〈여왕폐하의 007〉, 〈유어 아이즈 온리〉에서도 있었던 원작으로의 회귀를 시도한 작품이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거친 장면을 도입부에 사용하였는데, 이는 티모시 달튼의 거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필릭스가 상어에게 물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빌런들의 표정을 보면 각 캐릭터를 알 수 있는데,

배신자 킬리퍼가 상어에게 물리는 장면에서의 본드는 빌런 쪽에 더 가깝고 비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b. 소설에서 가져온 설정을 적절히 사용
앞에 적었듯이, 필릭스 라이터는 상어에게 물리게 된다. (영화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배우가 필릭스 라이터 역을 맡음)
이것만으로는 다소 부족했는지, 샤키(Sharky)도 살해당한다. (샤키는 사실, 소설에서의 쿼럴과 동일인물이라 볼 수 있음)

결국 제임스 본드는 임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복수에 올인하게 된다.
c. 달튼의 거친 이미지에 딱 맞는 맞춤형 대본
달튼의 이미지는 상당히 거칠다.
전작인 〈리빙데이라이트〉는 이 거친 이미지를 잘 살리지 못했지만, 〈살인면허〉에서는 거친 느낌이 제대로 살아난다.
일부 장면들은 R등급 대신 PG-13을 받기 위해 삭제됐는데, 이 장면들은 결국 Ultimate Edition DVD에 수록되었다.
Ultimate Edition DVD에서 복원된 장면은 다음과 같다
- 필릭스의 다리 한 쪽이 잘려있는 장면
- 홍콩 요원 로티가 좌우 가슴에 총을 맞는 장면
- 크레스트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
- 다리오의 다리가 갈려나가는 장면
- 산체스가 불타는 장면
확실하게 빌런을 끝장내는 무시무시한 제임스 본드
d. 베테랑 각본가의 마지막 작품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만든 사람이 세 명 있다.
첫째는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며, 둘째는 〈살인번호〉, 〈위기일발〉, 〈썬더볼〉을 감독한 테렌스 영이고, 마지막은 각본가 리차드 메이바움이다.
메이바움은 대부분의 007 영화의 대본을 쓴 007 전문 각본가인데, 결국 〈살인면허〉 개봉 2년 뒤인 1991년에 82세로 타계했다. (R.I.P)
소설 《죽느냐 사느냐》는 《카지노 로얄》에 이은 두번째 007 소설로, 전작에서의 유약함을 제거하기 위해 복수를 주제로 사용했다.
이후 복수는 소설에서는 종종 활용되었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묻혀버렸다가 〈살인면허〉에 와서야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소설이 아닌) 007 영화의 팬들에게는 오히려 전작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
a. 2% 부족한 액션
전체적인 거칠기는 최강이다.
적어도 〈카지노 로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007 영화 중에서 거칠기라면 따를 작품이 없었다.
대본이 원래 007 영화의 대본이 아니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하지만, 티모시 달튼은 원래 액션 배우가 아닌데다가 별도로 액션을 연마하지 않아 액션이 2% 부족하다.
※ 당시의 헐리우드 영화의 액션은 고만고만했으며, 리얼리티 액션이라는 흐름은 무려 16년 뒤에야 나타난다.
b. 불필요했던 Q의 등장
Q가 본드의 액션에 끼어든 것은 두 번이다.
〈옥토퍼시〉와 〈살인면허〉인데, 〈옥토퍼시〉에서도 Q의 등장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인디아나 존스를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다는 쪽으로 이해가 되긴 했다.
하지만, [살인면허]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다.
이 영화는 리얼한 제임스 본드를 묘사하는 영화인데, 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Q와 특수장비들이 대거 등장한다.
오히려 Q는 “Without Q branch, you’d been dead long ago. (Q 부서가 없었으면 자넨 예전에 죽었네)”라는 얘기를 하고서, 현장에서 본드를 도와준다.
〈리빙데이라이트〉의 갈퀴 금속탐지기에 이은 빗자루 무전기
물론, Q가 제공해주는 장비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장비가 아니라 지문감식기가 달린 저격총이나, 담배갑에 넣은 폭탄 등 현실적인 장비들이기는 하지만,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줬듯이, Q 없이 살아남는 본드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본드를 묘사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c. 전작과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
전작 〈리빙데이라이트〉는 사실 달튼을 위해 집필이 시작된 대본이 아니다.
로저 무어 경과 피어스 브로스넌을 대상으로 고려하여 집필되었기 때문에 달튼의 이미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살인면허〉에서 그의 이미지를 잘 살리자 전작과 비교가 되어버렸다.
결국 그의 전작이 발목을 잡아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제임스 본드도 다치고 피나는 사람이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
3. 게다가 겹친 악재
냉전의 시대에 태어난 제임스 본드에게 1989년은 위기가 시작된 해이다.
바로 동독과 서독이 “독일“로 통일된 해이기 때문이다.
결국, 2년 뒤인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냉전의 시대는 끝이나고, 인류는 영원한 발전을 향해 달려…
(STOP!)
이는 제임스 본드에게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흥행이 실패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4.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 흥행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감독 존 글렌은 자신이 감독한 007 영화 중 최고로 꼽음
많은 리얼리티 본드를 선호하는 팬들도 이에 동의함 - 1990년 8월 〈살인면허〉가 미국 흥행에 실패하자, 감독인 존 글렌과 각본가인 리차드 메이바움이 EON 프로덕션을 떠났는데, 이를 두고 무혈 쿠데타(bloodless coup)라고 불렀음
- 위의 두 명 외에도 본드 시리즈와 결별한 주요 인물은 티모시 달튼(제임스 본드), 로버트 브라운(M), 캐롤라인 블리스(머니페니) 그리고, 타이틀 디자이너 모리스 바인더 등이 있음
- 본드의 손목을 묶은 줄이 코카인 분쇄기에 걸리자 다리오(베니시오 델 토로 분)가 이를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실수로 티모시 달튼의 손에 상처를 입혀 촬영이 중단되었음
야, 줄만 잘라! 손 말고! - 영화 제목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영국식으로 licence로 할 것인가, 미국식으로 license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영국식으로 하기로 결정함
- 본드가 M을 배신하는 장면은 영국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약 밀매에 대해 공식적으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입장도 고려되었음
- 본드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장면은 헤밍웨이의 생가에서 촬영되었음
이 때 본드의 대사인 “I guess this is a farewell to arms,“는 물론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있거라》를 의미함
- 바에서 싸울 때의 아래 장면은 물론 〈유어 아이즈 온리〉 포스터의 셀프 패러디

- 본드는 케네디에게 “It’s man’s world“라는 대사를 치는데, 이는 〈썬더볼〉을 부른 톰 존스의 노래 〈It’s a Man’s Man’s Man’s World〉를 연상시킴

